이 글은 2026년 7월 23일 W Korea에 처음 게재되었습니다.
원문 보기: 「정체와 돌파가 공존하던 2026 아트바젤 속으로」
글: Sunny Kim / 에디터: 전여울
다시 바젤로
정체와 돌파, 안정과 실험이 공존했던 6월의 스위스 바젤. 시장을 둘러싼 엇갈린 시선 속에서 아트바젤 현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여전한 바젤의 힘을 목격했다.

흔들리는 시장, 흔들리지 않는 기준점
6월의 스위스 바젤. 아트바젤의 개막을 앞둔 주말 한낮의 도시는 고요하기만 했다. 햇살이 내려앉은 라인강, 일광욕을 즐기는 주민들. 평화로운 풍경과 달리, 미술계의 시선은 하나의 질문으로 쏠려 있었다. ‘과연 올해의 페어가 가라앉은 시장의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을 것인가.’ 특히 개막 직전, 페이스갤러리가 작가 및 재단 50여 곳과의 계약을 종료하고, 직원 50여 명을 감축한 소식은 업계가 처한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줬다. 메가 갤러리 모델 자체가 지속 가능한가에 대한 질문이 바젤 도착 전부터 업계를 뒤덮은 것이다. 하지만 도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하기만 했다.
불안정한 국제 정세와 미술 시장의 긴 침체 속에서, 올해 아트바젤이 어느 때보다 혹독한 시험대에 오른 것은 분명하다. 이를 의식한 듯 페어가 올해 처음 꺼내든 카드는 ‘바젤 익스클루시브’였다. 메인 섹터에 참가한 190여 갤러리가 프리뷰 오프닝에서 ‘최초’로 공개하는 작품들을 엄선해 선보이는 프로그램이다. 이미 이메일과 메신저를 통해 작품이 사전 거래되는 것이 익숙해진 지금, 이 시도의 실효성을 두고 회의적인 시선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거래 시계가 빨라진 시대일지라도 ‘첫 공개의 순간만큼은 다시 오프라인 현장으로 되돌려놓겠다’는 페어의 영리한 승부수였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알민 레쉬가 피카소 작품을 600만~650만 달러(약 91억~99억원)에 판매했고, 데이비드 즈워너는 엘리자베스 페이튼의 신작을 120만 달러(약 18억원)에 넘겼다.
VIP 오프닝 첫날, 페어장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올해 아트바젤은 전 세계 43개국 290개 갤러리, 103개국에서 몰려든 방문객과 270여 명의 미술관 및 재단 관계자를 맞이했다. 예년에 비해 미주와 아시아 지역 컬렉터가 줄었다는 데에는 업계도 이견이 없다. 그럼에도 2022년 아트바젤 파리 출범 이후 이어진 ‘이제는 파리의 시대’라는 전망을 단정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바젤이 만들어낸 밀도는 여전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곳에서는 하루 만에 둘러보고 떠나는 ‘원 데이 페어’가 좀처럼 성립하지 않는다. 일주일 가까이 이어지는 페어를 여러 차례 다시 찾는 관객이 많다는 점은, 바젤이 여전히 거래만을 위해 존재하는 페어가 아니라는 사실을 방증한다
바젤은 언제나 거장들의 무대였지만, 올해는 익숙한 이름들이 유난히 크게 다가왔다. 피카소, 게르하르트 리히터, 브루스 나우만, 윌렘 드 쿠닝 같은 블루칩 작가들이 메가 갤러리 부스의 중심을 차지했고, 컬렉터들 역시 새로운 가능성보다 이미 검증된 이름에 먼저 반응하는 분위기였다. 판매 결과는 이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하우저&워스는 피카소를 3,500만 달러(약 535억원), 게르하르트 리히터를 2,000만 달러(약 306억원)에 판매하며 올해 최고가를 기록했다. “올해 세일즈를 보면 사람들이 왜 ‘바젤은 바젤’이라고 말하는지 분명해져요. 다만 블루칩 작가 판매가 대부분을 차지했다는 건, 사람들이 그 어느 때보다 안전한 선택을 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죠. 원래도 존재했던 경향이지만, 올해는 훨씬 선명하게 드러났어요. 불확실한 시장에서 검증된 이름을 선택하는 분위기가 강해진거죠.” 갤러리현대 전시팀 권혜원의 말이다. 실제 갤러리현대 역시 이성자, 정상화, 이건용 등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마스터’ 작가를 중심으로 부스를 구성했다. 참여 작가 7명 가운데 가장 젊은 작가가 1962년생의 화가 김민정이었을 정도다.
관람객의 발길은 자연스럽게 아트바젤의 시그너처 섹터인 ‘언리미티드’로 이어졌다. 올해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모마 PS1의 큐레이터 루바 카트리브가 이번 섹터의 새 지휘자로 지목됐다는 사실이다. 모마가 거장 중심의 대규모 전시를 선보여왔다면, 모마 PS1은 보다 실험적인 작가와 동시대의 새로운 담론을 꾸준히 발굴해온 기관이다. 카트리브 역시 제도 밖의 목소리와 주변부 작가들을 꾸준히 소개해온 큐레이터다. 올해 언리미티드에도 그 시선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어느 해보다 ‘다양성’이라는 단어에 가까운 풍경이었다. 그녀가 제시한 올해의 키워드는 ‘기념비성’이다. 59개에 이르는 대형 프로젝트는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오늘날 기념비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했다. 설치와 조각, 퍼포먼스, 영상, 몰입형 환경을 넘나드는 작품들은 거대한 규모를 과시하기보다, 지금 미술이 어떤 규모와 감각으로 시대를 감당하고 있는지에 집중했다. 입구에서는 크리스 버든의 경찰 제복 설치작 ‘L.A.P.D. Uniforms’가 관객을 압도했고, 토마스 루프는 9·11 테러 이미지를 통해 미디어 시대의 기억 소비 방식을 서늘하게 환기했다. 반면, 알프레도 하르, 김보희, 야요이 쿠사마의 작업은 비극과 소음을 넘어 ‘치유와 회복’이라는 또 다른 방향을 제시했다. 서로 다른 매체와 언어로 완성된 작업들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모였다. 오늘을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세계를 기억하고 견뎌낼 것인가.
올해 아트바젤이 보여준 또 다른 진화는 유럽 무대에서 첫선을 보인 ‘제로 텐’ 섹터다. 디지털 아트와 생성형 AI 작업, 크로스미디어 프로젝트를 페어의 제도권 안으로 과감하게 끌어들인 이 섹터에서는 인간과 기계의 창작 경계를 질문하는 윌리엄 마팡의 알고리즘 기반 회화 등이 큰 주목을 받았다. 도시 전역으로 확장된 ‘파쿠르’ 섹터 역시 ‘더불어 살아가기’를 주제로 카페와 바, 공원 등 일상의 공간을 무대로 삼았다. 작품을 따라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레스토랑과 광장, 또 다른 전시를 마주하게 된다. 길을 찾기 위해 펼친 가이드북은 어느새 다음 작품이 아니라, 다음 장소를 고르는 지도가 됐다.
메세 밖에서 완성되는 도시
‘리스테(Liste)’ 페어를 빼놓고는 바젤 아트 위크를 온전히 이야기하기 어렵다. 1996년 시작한 리스테는 신생 갤러리와 젊은 작가를 집중적으로 소개한다. 이미 검증된 이름보다 다음 세대의 가능성을 목격하고 싶다면, 가장 먼저 향해야 할 곳이기도 하다. 참가 갤러리에는 최대 다섯 번의 참가 기회가 주어지고, 이곳에서 기반을 다진 뒤 아트바젤로 진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아트바젤의 등용문’이라 불리는 이유다. 30주년을 맞은 올해는 36개국 105개 갤러리가 참가했고, 특히 아시아와 동남아시아 갤러리의 존재감이 두드러졌다. 한국에서는 에이라운지 컨템포러리, 상히읗, 샤워, 실린더, G갤러리, 프라이머리 프랙티스, 휘슬 등 7개 갤러리가 참가했으며, 국가로는 두 번째로 큰 규모를 기록한 것도 눈에 띈다. 이 밖에 방콕과 자카르타, 과테말라시티 기반의 갤러리도 이름을 올리며, 리스테가 여전히 새로운 지역과 세대를 끌어들이는 플랫폼임을 보여줬다. 올해로 세 번째 리스테에 참가한 실린더의 노두용 대표가 말했다. “출품작 대부분을 유러피언 컬렉터에게 판매했어요. 그중 70~80%가 스위스 컬렉터라는 점은 예상 밖이었죠. 규모가 큰 작품보다 작더라도 자신의 컬렉션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작업을 고르는 컬렉터가 많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리스테는 한때 ‘젊음’을 증명하기 위해 실험성을 앞세우는 분위기가 강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시장성과 실험성이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페어가 되어가고 있다는 걸 느껴요.”
해가 지자 도시 곳곳에 흩어졌던 사람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바젤 SBB역 인근으로 줄지어 모여들기 시작했다. 올해로 5회째를 맞이한 페어 ‘바젤 소셜 클럽’에 가기 위해서다. 이번에는 ‘오피스’라는 흥미로운 주제로, 역 근처의 빈 사무실 건물을 전시장으로 탈바꿈시켰다. 폐공장, 농장, 은행을 거쳐 올해는 거대한 오피스 빌딩이 전시와 바, 공연, 치열한 토론과 만남이 교차하는 장으로 변신한 것이다. 공동 창립자인 로비 피츠패트릭은 이 플랫폼을 “새로운 세대의 컬렉터가 전통적인 페어보다 훨씬 편안하고 자유롭게 진입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전시와 퍼포먼스, 아트북 페어, 명상, PT 세션, 그리고 지하 주차장에서 펼쳐지는 DJ 댄스파티까지, 일주일 내내 흥미로운 프로그램이 쉼 없이 이어졌다. 무수히 많은 선택지가 존재했지만, 무엇을 보러 왔든 결국 모든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1층 중정으로 모였다. 이 소란 속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것은 역시 ‘사람들과의 만남’ 그 자체기 때문이다.
마우리치오 카텔란 특유의 유머가 깃든 설치 작품이 걸린 로비를 지나면, 곧바로 인파로 가득 찬 중정이 나타난다. 그곳에서는 뜻밖의 재회만큼이나 새로운 인연이 끊임없이 싹트고 있었다. 처음 만난 사이일지라도 금세 대화가 시작되고, 카메라를 켜고 함께 사진을 찍기보다는 서로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주고받는 풍경이 자연스럽다. 소개는 또 다른 소개를 낳고, 갤러리스트와 작가, 컬렉터, 교수, 학생, 디자이너 사이의 구분은 어느새 흐려진다. 대화는 깊은 밤까지 이어지고, 다음 날 다른 전시장에서 다시 마주치는 일도 다반사다. 아트 위크 동안 바젤 소셜 클럽은 오후 4시에 문을 열어 새벽 3시에 닫았다. 한눈에 봐도 업계 사람들의 하루 동선을 그대로 따라가는 시간표다. 낮에는 페어와 기관 전시를 돌고, 저녁이 되면 자연스럽게 모두가 이 ‘만남의 광장’으로 모인다. 결국 바젤 소셜 클럽의 중심에는 프로그램보다 사람이 있었다. 바젤 출신의 루크 피체, 미디어아트 스튜디오 ‘iart’에서 전략적 파트너십을 총괄하는 그는 말했다. “바젤 소셜 클럽이 특별한 이유는 결국 진솔하고 친밀한 커뮤니티를 만들어냈기 때문이죠.”
도시는 어떻게 플랫폼이 되는가
아트바젤이 여전히 세계 미술 시장의 기준점으로 남아 있는 이유는 메세 전시장 안의 풍경만으로는 온전히 설명되지 않는다. 일례로, 바젤 소셜 클럽은 기존 아트페어의 높은 문턱을 대폭 낮춤으로써, 신생 갤러리와 젊은 작가에게 세계 무대에 설 기회를 제공한다. 바젤 예술디자인대학교(FHNW)를 비롯한 지역 미대 학생들은 이 행사를 발판 삼아 국제 미술계 관계자들에게 자신의 작업을 소개하고, 도시 곳곳에서 펼쳐지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의 이면에는 지역 자원봉사자들과 예술 기관, 그리고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촘촘하게 얽혀 있다. 글로벌 기업 역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지만, 브랜드를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는다. 무심코 앉은 소파는 비트라 제품이었고, 작품은 USM 모듈 위에 놓여 있는 식이다. 현지인들은 바젤을 “제약회사 연구원들만 사는 조용한 도시”라며 농담처럼 이야기한다. 그러나 미술 주간이 시작되면 학교와 기관, 기업과 시민이 각자의 방식으로 아트바젤을 함께 만들어온 과정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바젤을 둘러싼 시장의 평가는 여전히 엇갈린다. 그러나 현장에서 목격한 바젤은 쇠퇴하는 시장이라기보다 다음 단계로 진화 중인 플랫폼에 가까웠다. 메세에서 시작된 하루는 미술관과 리스테, 바젤 소셜 클럽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그 과정에서 거래는 끝이 아니라 다음 만남과 프로젝트의 출발점이 되었다. 아트바젤의 가치는 판매 실적만으로 매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도시 전체를 일주일 동안 하나의 경험으로 엮어내는 능력에 있었다. 시장은 언제든 변한다. 하지만 그런 능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